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The Way We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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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135797531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4월 25일 (토) 16:5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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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0일에 쓴 글로 추정. 홈페이지 날려 먹으면서 소실되었다가, 외장하드 속에서 발견.

이 항목의 원래 내용은 좀 더 자세하고, 책의 각 챕터별 정리를 해 놨었는데, 날려 먹었다.

아래 글은 페북에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독후감으로서의 의미는 충분하므로 일단 다시 올려 둔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서 소감

"인간은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애당초 「생각」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인간이 "생각"을 할 수 있을때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며,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여러 형태의 종교나 철학 등으로 체계화되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 문제에 답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는 이 순간에도 '생각'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철학자와 같은 인문학자들이 문제를 깊이 고찰하며 자연스럽게 논리학이나 수학 같은 개념이 나오게 되었고, 결론적으로는 물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개념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17세기 이후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공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였고, 그 결과중의 하나로 지금 컴퓨터공학이라는 분야도 생겨나게 되었다. 비록 인간은 "생각"이란게 무엇인지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부수적인 결과로 지금과 같은 찬란한 현대 문명을 일궈내었다.

이 책은 전형적인 '문과생 책' 범주--심리학 또는 철학--에 속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문과생 책을 싫어한다. 모호하고, 쓸데없이 암기할 내용만 가득하교, 겉멋만 들어서 자연계열 및 공학계열의 각종 성과를 대충 때려 박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생각이 꽤 바뀌었다. '문과생 책'이라고 모두 다 쓸데없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며, 인문계열의 현실 고찰이 지금 당장은 쓸모 없을지라도 절대 없애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물론 아직도 현대 대학 과정에서의 양산형 인문계열 교육은 매우 싫다)

대충 컴퓨터 앞에서 깨작거릴줄만 알았던 나는 작년 여름에 보안 연구실에서 기계어를 다루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프로그램에 깔린 저수준의 컴퓨터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일반물리학2 과목을 재수강할 때 전기전자학의 태동과 그의 발전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근대의 물리학자들이 없었다면 당연히 트랜지스터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컴퓨터 제작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겨울방학에 현대 물리학의 기초들에 대해 공부했다. 중력,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부터 양자역학, 초끈이론에 이르기까지 여러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각 시대별 선두에 섰던 물리학자들은 "왜 이 세계는 이렇게 존재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매우 인문인문한 생각을 하면서 체계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현대적인 초끈이론(가설)을 예로 들어보자. 2015년 현재까지 밝혀진 초끈이론 규칙 중에서 초끈은 10차원에 존재해야만 하는데, 이는 4차원 공간의 초대칭성을 가정했을때 여분 차원은 6차원의 칼라비-야우 다양체에 축소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놓고 물리학자들마저도 말이 많다

  • 정말 우리 우주가 이렇게 복잡해야만 하는가?
  •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통해 얻은 결과가 현대 물리학과 차이가 없다면 그 이론을 계속 연구해야 하는건가?
  • M-이론에서의 통합은 우주가 그렇게 존재하므로 타당한 것인가?
  •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을 연구할 가치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같이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최근에 합격한 GSoC 2015 때문에 다른 공부는 다 접고 인공지능 프레임워크(OpenCog) 개발 기여에만 주력하게 되었다. 그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여러 가지 개념을 혼합해서 새로운 발현 구조를 생성해내는 "개념적 혼성" 을 시뮬레이션하는 모듈 개발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와 '바이러스'의 일부 특성들을 선택적으로 투사하여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생성해내는 것이 되겠다.

이런 "개념적 혼성"이란 개념은 비교적 최신(2000년 전후)에 발달한 인지심리학 이론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정립한 질 포크니에 박사와 마크 터너 박사가 서술한 책이 바로 이 책 -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사실 GSoC 프로젝트 뛰어들 땐 그냥 쉬운 개념인 줄 알았는데 OpenCog 프로젝트 리더인 벤 고츨 박사님이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용이 후덜덜하다. 겉보기엔 평범한 인문학-인지심리학 책이지만 철학, 언어학, 신경과학, 진화론까지 어우르는 굉장한 책이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건 읽고 보니 진짜 인간이 '개념적 혼성'을 통해서 생각한다는 게 매우 신빙성있고, 애초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는지 무서울 정도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러한 내용들을 적절한 증거로 제시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기존에 접했던 문과생 책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대충 그럴 것 같잖아요~" 라는 모습이었다면, 이 책은 추상적인 내용을 적절한 논리 기법으로 전개시켜 나가며, 실생활의 현상들을 설명하려 제안하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인류를 실제로 발전시키는게 엘리트 이과생이라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횃불을 든 사람이 바로 엘리트 문과생들 아닐까.

인간 진화론적으로, 인간 발달적으로, 그리고 문법 체계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수사학적 기교들이 모두 이 '개념적 혼성'이라는 간단한 원리로 우아하게 설명이 된다. 또한 이 원리가 가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닌 뉴런간의 연결 통합으로 설명될 수 있는 실체적 현상이라서 더욱 믿음이 간다.

자연계 생물의 신경계는 진화를 통해서 외부의 존재를 신경학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서 "외부의 존재"란 특정 신경 조직의 신호가 도달하지 못하는, 전류를 통한 정보 통신이 불가능한 개체이다. 이러한 감지 능력은 점차 발달되어 고등동물은 포식자의 종류를 머릿속에서 '단순 혼성'을 하여 포식자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도망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10만년 전에, 거듭된 진화로 현대적 인간은 마침내 자연으로부터 "이중범위 혼성"이라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 능력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입력공간 프레임으로부터 발현구조를 가진 "하나의 혼성공간"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은 무한한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면서 이 생각을 일정한 규약을 가지고 다른 인간에게 표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였다. 사실상 의식과 언어는 구별이 불가한 것이었다.

갓난아기들은 우리에게는 고착화된 연결을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연결함으로서 우리를 기쁘게 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 돌을 갓 지난 조카 생각이 많이 났다ㅋㅋ). 그들은 책의 페이지를 제멋대로 넘기면서 때로는 뒤에서 앞으로 읽고, 뒤집어서 '읽는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점차적으로 그들 머릿속의 연결망을 정교화하여 연결망 전역에 위상과 투사를 고착화시킨다. 이러한 복잡한 혼성은 생물학적 진화로 발달한 인간의 강력한 이중범위 혼성 능력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며 일단 습득하고 나면 이러한 연결망을 비활성화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성인은 흰색 종이 위의 검은 모양을 보고 낱말 연상을 하지 않기가 매우 어렵다. 모르는 언어로 쓰여진 책을 보면 갓난아기의 연결망을 간접적으로 다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휴학하고 강한 인공지능 좀 건드려 볼까?" 라고 생각만 하던 나는 행운스럽게도 여러 가지 종류의 지원군을 얻었다.

  1. "개념적 혼성"이라는 탄탄한 작동 원리. 이 원리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구현해줄 것이다.
  2. "OpenCog"라는 인공지능 프레임워크. 대규모의 자료 분산 처리, 부분적 유전 알고리즘 사용, 부분적 확률 알고리즘 사용, 복수의 모듈이 동시에 자료 value를 조작할 수 있는 모듈화, 단어 처리, Unity 또는 실제 세계의 로봇에 탑재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까지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본질적인 알고리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3. 성숙한 프로그래밍 제반 환경. 각종 라이브러리는 오픈 소스라는 고귀한 가치에 의거하여 전세계인과 공유되고 있으며, 통합 개발 환경은 나날히 발전하고 있어 개발 속도를 극대화시켜준다.
  4. 충분히 상향평준화된 개인용 컴퓨터들의 성능. 컴퓨터들의 클라우드 연산은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5. 마지막으로 안정적인 주변 환경. 구글은 활동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고마우면서도 죄송스러운건 부모님이 내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시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순간에도 누구는 알바를 하고 있을 것이며 누구는 군대에 있을 것이다. 더 넓게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5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이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당장 먹고 살기 바빴을 것이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긴 매우 부끄럽지만 이런 자유로운 학술적인 연구는 인텔리 계층만이 할 수 있음과 동시에 인텔리 계층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현재 대학생 신분인 나는 이 시대의 인텔리 계층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기 다른 사회문화적인 기여 방법이 있듯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고상한 연구를 하는 것이 행복하면서도 뭐랄까, 중2병스러운 책임감이 느껴지는 나날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번역 후기에서 "모두가 위기라는 인문학의 정신을 새롭게 끄집어내는 계기를 마련해보자"고 한다. 그럴 정도로 질 포코니에 박사와 마크 터너 박사는 너무 흔해서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인 우리의 사고 공식인 "개념적 혼성"을 구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여러가지 패턴들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았다. 정말 거대한 특이점이 곧 다가올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에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이 출간되었고, 이 원리를 이용한 인공지능 구현에 대한 논문들이 전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다. 더불어 내가 이 원리를 이용해서 구현 시도를 해보고 있다는게 참 영광스럽다.

책에도 나와있듯이 앞으로 어려움은 많겠지만 일단 체계적인 이중범위 혼성 능력을 개발하고, 주변 환경을 잘 조성해준 다음에 이 모듈에게 '인간 척도를 달성하는 방향으로의 개념적 혼성'을 명령하면 그 모듈이 "생각"을 못 할 이유가 없다. 매우 고무적이다.